금문교 교대와 고정장치
샌프란시스코 만의 입구에 잇는 금문교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특별한 자연적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20킬로미터의 대형 지진대에 속하며 태평양과 직접 면해 있습니다. 지진의 부담과 조류와 해류, 강풍을 감안하여 교량의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는 어느것보다도 강화되어야만 했습니다. 금문교는 두 교탑 사이의 경간이 1280m로 당시 세계 최장의 현수교였습니다. 책임 토목기사인 조셉 스트라우스(Josjep Strauss)는 뉴저지 철강회사에서 일했었고 직접 교량 설계를 해 본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교량 설계와 건설에 관한 풍부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금문교는 무게가 약 2만 2200톤이고 케이블의 장력 6만 1500톤을 지탱하며 수면 위 75미터 높이에 있는 도로보다도 150미터나 더 높고 교탑의 토대는 수면보다 34미터나 깊은 곳에 있습니다. 금문교 탑의 교대를 구축하는 일은 건설 역사상 가장 복잡한 작업이었습니다. 현장은 사실상 공해상이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코퍼댐의 역할을 하는 방호물을 설치하고 나서 교대를 세워야 했습니다. 수면 아래의 공사 현장은 축구장만한 넓이의 엄청난 크기였으므로 우선 폭약으로 바위를 깨고 그 위에 교대를 세웠습니다. 폭약을 관으로 내려보내 자동으로 폭발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 역시 위험한 일이었고 폭풍과 조류, 선박 사고 역시 공사를 지연시키는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원형 방호물이 완전히 메워지자 수면 아래로 콘크리트 20미터 두께의 기단이 구축되었습니다. 물을 빼낸 뒤 생겨난 타원형의 구멍 안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하였습니다. 바다의 바닥층이 하중을 견딜 만큼 튼튼한지 확인하기 위해 토목기사들은 콘크리트에 뚫린 갱도를 타고 해저에 있는 너비 4.5미터짜리 돔 모양의 강철로 된 방 여덟개로 내려가서 암반을 조사했습니다. 조사 후에는 조사용 갱도와 방에서 물을 뽑아내고 콘크리트로 메웠습니다. 마린반도 쪽의 기단을 구축하는 일 역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여기서는 코퍼댐을 설치하여 물 없는 바닥을 만든 후 사암과 점토가 굳어져 이루어진 수성암 셰일(shale)을 걷어내고 암반을 노출시켜 탑의 교대를 세웠습니다. 다리를 떠받칠 케이블을 고정하기 위해서 언덕 사면에서도 땅을 파는 작업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케이블에는 28만 킬로뉴턴 이상의 장력이 걸리므로 이 엄청난 힘에 견디려면 고정 장치를 계단 모양으로 된 세 개의 맞물린 블록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금문교의 철탑
이 철탑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았던 만큼 건설에도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교탑의 다리들은 철판을 구부리고 리벳을 박아 앵글 구조물처럼 만들었습니다. 곧은 정도와 정확도를 점검하기 위해 탑 하나의 다리 60%를 가지고 펜실베이니아의 철공소에서 탑의 일부분을 제작해보았습니다. 워낙 크기 때문에 옥외에서 작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탑을 해체하여 철도편으로 수송했으며 이것을 배에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여 태평양 해안을 북상했습니다. 교탑은 125밀리미터 두께의 토대판 19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부품은 탑신에 올라갈 수 있는 대평 이동식 기중기로 들어올려 맞추었습니다. 모든 부품을 조립하고 검사해서 완전히 들어맞지 않으면 끝을 갈아서 맞추었습니다. 리벳은 탑 바깥의 비계에 탑재된 석탄 용광로에 넣어 가열한 후 압축공기 관을 통해 구멍에 맞추고 용접했습니다. 리벳을 박는 사람들은 탑의 안팎을 드나들며 때로는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소음 역시 굉장했으며 뜨거운 리벳이 페인트를 칠한 부분에 닿을 때 나오는 연기와 붉은 납 페인트 성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금문교의 케이블
교탑이 완성되자 다리 상판을 떠받칠 케이블이 걸렸습니다. 케이블을 제작하고 설치한 업체는 뢰블링 회사였습니다. 양측 해안의 고정 장치에서 나온 강철선을 꼬아서 더 굵은 가닥으로 만들어 넓게 벌린 다음 끝 부분을 아이바(eyebar)에 넣어 다시 해안으로 보냈습니다. 케이블은 2만 5천개의 철선을 61가닥으로 묶은 다음 그 다발을 모아 수압 잭으로 압축했습니다. 탑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베어링이 장착된 안장 같은 장치를 설치하여 교탑과 케이블이 압력이나 온도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케이블을 매단 뒤에는 볼트로 고정하였습니다. 온도가 변화하면 새벽에는 팽팽하다가 한낮에는 늘어져 긴 케이블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케이블 다발에 홈을 파서 죔쇠(clamp)로 조여놓아 강철 밧줄이 잘 맞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케이블을 강철 구조물에 매달고 탑의 양쪽으로 튀어나온 상판 부분에 걸어서 상판을 지탱하도록 했습니다. 케이블을 설치하는 사람들과 철조물을 다루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그물을 쳤고, 이 그물은 대규모 공사에서는 이때 처음 사용한 것입니다. 그물 덕분에 몇몇 인부들이 목숨을 건졌지만 완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도로 하부의 목조물을 떼어내는 데 사용하던 단이 흔들리면서 그물이 찢어져 열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공사는 예정보다 앞당겨 완공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 규격의 오렌지색 페인트로 칠하고 1937년 5월 27일 다리를 개통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다리는 교량 설계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