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화로운 장식의 궁전
1453년 오스만 술탄 메메드 2세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을 때 도시는 황폐해졌고 인구도 격감하였습니다.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도시가 재건될 때 까지는 웅장한 궁전을 정부의 관청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1472년에 이르러서야 이스탄불은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포문의 궁전'이라는 뜻의 토프카프사라이(Topkapi saray)는 왕의 거처이자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프카프의 장식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호화로움이 지금까지 대체로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도프카프는 독특해졌고 한때 세계 최강국이던 절대주의 궁전의 생생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토프카프는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1차 궁정
수세기 동안 발달한 결과, 현재 이 궁전은 네 개의 궁정을 중심으로 모인 이질적인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쪽으로 들어가는 1차 궁정은 도시에서 가장 가까우며 가장 크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6세기에는 비잔티움의 하기아 이레네 성당이 관장했고 그 뒤 오스만인들이 병기고로 사용했으며 시동들이 대학의 엄격한 규율을 피해 도망쳐오는 큰 병원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화폐 주조소가 있었으며 대형 화물마차들이 많은 물자와 매년 배 500척 분량에 해당하는 목재를 이곳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이 궁정은 런던 다리처럼 반역자들의 목이 걸려있는 '왕의 대문'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그 중세적인 분위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궁전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했습니다. 권표를 지닌 관리를 제외한 방문객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난쟁이와 벙어리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2차 궁정
2차 궁정인 디반 궁정은 지금도 잔디밭과 오래된 나무들과 가젤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담장이 남아있습니다. 긴 기단의 뒤에는 현재 도자기 박물관이 된 주방이 있고, 요리사와 접시닦이들이 묵는 막사와 넓은 창고들이 있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디반 홀은 16세기 초에 지었고 18세기와 공화국 시대에 새로 단장하였습니다. 또 다른 쪽에는 16세기말에 재건한 커다란 막사가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막사입니다. 막사와 디반 홀 사이에는 술탄이 올라가 궁전을 조망하던 탑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모습의 탑 꼭대기 부분은 19세기 중반에 추가되었습니다. 디반 궁정에서는 지금도 궁전의 대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화려하게 수놓은 카프탄(kaftan)을 입고 금박의 문자들로 장식된 매끄러운 주랑에 앉아 있습니다.
3차 궁정
지복의 대문을 지나면 알현실이 나옵니다. 이것은 왕실 건축가인 알라에틴 아가가 1515년부터 1529년까지 지었습니다. 그는 대지진으로 인해 대규모 쇄신 계획을 제출하였습니다. 알현실의 주변에는 멋진 베란다들이 있고 입구 옆은 이즈니크에서 가져온 특별한 타일 판과 쉴레이만 대제의 이름을 딴 아름다운 분수로 장식하였습니다. 내부의 벽과 바닥에는 원래 금으로 만들고 진주를 박은 천이 덮여 있었지만 이 금은 18세기 경제위기 때 녹여졌습니다. 누각의 왼편에는 메카를 향한 방향으로 대학의 대형 모스크가 서 있는데 현재는 궁전 도서관으로 사용됩니다. 궁정의 3면은 대학의 기숙사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현재 의상과 소품들을 소장한 박물관과 궁전 관리사무소로 사용됩니다. 대학에서는 뛰어난 학생들은 졸업하고 직책이 없으면 술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 건물들의 아래에는 또 다른 원래의 건물이 있는데, 현재 이곳에는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뒤 가져온 예언자 마호메트의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입구의 넓은 홀은 다부트 아가가 제작한 무라드 3세의 대형 분수와 타일로 장식하였고, 예전에 침실로 쓰이던 이곳은 마호메트의 기치와 의상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안이 어둡습니다. 벽에는 16세기의 아름다운 이즈니크 타일판들이 걸려있습니다.
하렘
하렘은 '환관의 궁정'이라는 높은 막사들을 통과하여 들어갑니다. 흑인 환관들이 지키고 있는 하렘은 술탄의 아내, 정부, 여자 친척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이들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다지 웅장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의 타일은 색깔이 풍부하지 않지만 디자인이 뛰어납니다. 18세기말에는 거울과 밝은 시골 풍경의 그림이 있는 로코코 양식의 방들이 추가되었는데 이것들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방인 무라드 3세의 방에는 분수가 있습니다. 그 밑에는 하렘에 딸린 넓은 지하 수영장이 있습니다. '왕좌의 홀'은 유행의 변화로 훼손되었고, 매우 아름다운 '상속자의 누각'에서 원래의 것은 꽃들이 복잡하게 그려져있고 테두리에 금박이 둘러진 17세기 초의 돔뿐입니다.
4차 궁정
4차 궁정의 기단에는 궁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키오스크 두 채가 있습니다. 아산 아가가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이 키오스크들은 무라드 4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그다드 키오스크는 가장 대형이며 멋진 타일과 목각 상감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덮개가 덮인 높은 벽난로의 양편에 있는 가젤 타일화는 기단 맨 끝의 가젤 타일화와 조화를 이룹니다. 여기에는 또한 연못이 딸린 전망대가 있어 술탄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진주 키오스크를 비롯하여 공원의 누각들은 대부분 없어졌습니다. 대리석과 석재로 화려하게 치장한 천막들은 오스만 건축의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의 상호관계를 말해줍니다.